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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염석주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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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인 댓글 0건 조회 2,355회 작성일 07-06-29 10:20
염석주(錫柱)는 국파공파  북실공선조님의 후손으로 21세손이다.
1895년 수원군 일형면 율전리 366(현재 성균관대학 근처)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수학한 인텔리로,
고향과 다름없는 안산 '막고지'(현재 사동)에서 거처하면서
상록수 최용신 선생의 농촌 사업을 후원했다.

그는 만주 길림성에 60만평의 농장을 마련하여 독립군 제2지대(김창환 장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며, 상해임시정부로 경비를 보내는 해외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염석주는 신간회 수원지역 책임자로 활동하고 여운형 등 동지들과 협력하며
국내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행적들은 현지에서 은밀히 내사를 해온 '오야마'란 고등계 형사에게
꼬리가 밟히고 1944년 4월 동대문경찰서에 검거되어 18일간의 모진 고문 끝에
통한의 생을 마감하고 만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신간회에 참여한 인사들은 좌경으로 낙인 찍혀,
당시 생존한 분들은 공식 활동을 제약당하고,
순국한 애국지사들은 독립운동가의 반열에서 제외되는 불운으로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노인컴퓨터중앙교육원(일명 은빛둥지) 회원들이 다큐멘타리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하루속히 이 분의 공적이 인정되어 당당한 애국지사로 서훈되기를
다같이 기대하여 봅니다.

2007년 6월 29일 오마이 뉴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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