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개국과 후삼국을 통일할 때의 공적 등으로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었으며 大司徒(대사도)에 오르신 분이다. 고려 태조 23년(940) 新興寺(신흥사)를 重修(중수)하면서 功臣堂(공신당)을 세우고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포상하고 동서 벽에 공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를 삼한벽상공신이라하며 公께서도 이때 三韓公臣(삼한공신)에 책봉되었다 ○시조와 성씨의 유래에 대하여 기록으로 고증할때 해동역사의 廉斯鑡(염사치)가 이름을 하사받은 기록으로 우리의 得姓祖(득성조)가 아닌가 접근하며 조선시대 趙汝籍(조여적)의 靑鶴集(청학집)에 廉氏出于帶方國也(염씨출우대방국야)라는 기록과 염사치의 거주지와 대방국의 위치 또 시조의 거주지인 경기도 장단과 본관 파주 등이 모두 인근으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며 또 선덕여왕때 국정에 참여했던 廉宗(염종)과 진덕여왕때 김유신과 함께 대신을 지낸 廉長(염장)이 삼국유사 기록에 있으며 이외도 태조왕건때의 재신 廉卿(염경)과 廉湘(염상)등의 기록으로 보아 시조 이전에도 이땅에 염씨가 살고 있었으나 단지 시조와의 계대를 알 수 없을 뿐 우리는 이땅의 고유성씨요 토착민이라는 것이 분명하며 정확한 유래가 없다하여 중국왕족의 후예라거나 중국귀화성씨라 오인하는 것은 모두 근거가 없는 낭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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