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8세에 하늘과 땅이 바로 衾枕(금침)이다 라고하는 李白(이백)의 시구로써 백일장의 시제가 되는데 공이 머리로 崑崙山(곤륜산)을 지탱하고 다리로 눕히겠다라고 하시다 효행이 특이하시고 禮學(예학)에 밝아 경향에 이름이 알려지셨다 돌아가신후 1884甲申에 효행과 학문이 알려져 통훈대부사헌부감찰에 증직되었고 1885乙酉에 褒旌(포정)의 일로 大宗伯(대종백)에게 올리니 ‘탁이의 행실을 들으니 극히 가상하나 旌褒(정포)란 事體(사체)가 지극히 중요하니 公義(공의)가 더욱 번창할 때까지 좀더 기다리라’고 하시었다 광산정시림撰(찬)으로 山陽誌(산양지)에 기록되어있다 文鉉書墓表后(문현서묘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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