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파공파 10世 喜님 족보

고 조 증 조 조 부 부 친 본 인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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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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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愼孫
 숙
 淑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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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
 喜
공헌 공필 공저 공작 공탁 
류안경 류신중 오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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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喜 희   
字季膺 號錦圃 錦田
生1542壬寅6월16일
卒1636丙子12월21일
官贈資憲大夫知中樞府事兼 五衛都摠府都摠管軍資監正
墓나주삼영동
 내영산선산局內壬坐有碑床石
O계응 S금포 금전
B증자헌대부지중추부사겸 오위도총부도총관 군자감정
국내 임좌 비석있음
配貞夫人晋州鄭氏
 父宗堯 監察使
 墓건위와 쌍분
配貞夫人利川徐氏
  
墓건위의 左麓下壬坐
F정부인진주정씨
G종요 감찰사
F정부인 이천서씨
墓건위의 좌록아래 임좌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에 기쁘고 성내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셨으며 목소리는 종소리와 같았다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어 많은 感應(감응)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맨 먼저 倡義(창의)할 뜻을 품고 병졸과 군량을 모으고 檄文(격문)을 영남 호남 등에 보내셨다 창의사 김천일과 기일을 약속하고 왜적들을 쳐부수기로 하였으나 늙으신 아버지의 병환이 심하여 잠시라도 아버지의 곁을 떠날 수 없음을 깨닫고 모였던 병사와 군량을 관군에게 인계하였다 왜란을 피하여 어버이와 충경공 유상을 모시고서 배를 타고 무안 사창의 앞 바다에 이르렀을 때 꿈에 神人(신인)이 나타나 왜병을 피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이리하여 타고 왔던 배를 갈대밭 가운데 감추어 두고 가만히 적선이 밤에 지남을 엿보다가 5명을 쏘아 죽였다 이리하여 암태도에 들어가 8년을 무사하게 지내다가 고향에 돌아오시니 세상 사람들이 지극한 충성과 효도에 하늘도 감동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6년이나 廬墓(여묘)를 살으셨다 그 뒤 서울에 벼슬직에 계실 때 丙子1576년 가을에 풍덕에 가시어 강화를 경유하여 귀가도중 갑자기 胡敵(호적)의 변을 통진에서 만났었다 호장이 그 분의 神彩(신채)와 거동이 비범함을 보고 진중에 가두어 두었다가 갑곳진에 끌고와 江都(강도)의 요새와 형세를 물으며 항복을 받고자하니 그때 나이 95세였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시고 땅을 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오랑캐 놈들이 강폭한 힘을 믿고 감히 우리 예의의 나라를 침범하고 또 어떻게 사대부들을 욕보일 수 있겠느냐? 하늘이 반드시 너희들에게 큰 벌을 내릴 것이다 다만 나만을 빨리 죽이고 곧 물러가라”고 하였다 호병들이 죽이려고 하는데 호장이 만류하며 말하기를 의인이니 죽이지 말고 돌려보내도록 하라고 하였다 서서히 營中(영중)을 나와 行狀(행장)을 챙겨 서울에 돌아와 손자인 振國(진국)으로 하여금 의병을 일으켜 호병과 싸우도록 하였으나 和親(화친)이 이룩되었다는 소문을 듣고서 방문을 잠그고 모든 음식을 거절하였으며 울분이 병이되어 돌아가셨다 당시 홍처후 홍처호 송시걸 오두인 장중 등 여러 현인들이 만사를 지었으며 이조판서 홍인서는 行狀(행장)을 참판이광헌은 유사를 오제 송상기는 常享(상향) 축문을 각각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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