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학문을 좋아 하였으나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 1610년에 훌륭한 행실이 선교랑에게 알려져서 繕工監監正(선공감감정)에 제수하였으나 굳게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1624년李适(이괄)의 변에 의병을 일으켰었다 군사와 군량을 모으고 공주에 이르러 아우 公綽(공작)을 먼저 보내어 錦南鄭忠臣(금남 정충신)과 더불어 이괄을 토벌하여 목을 베어 임금께 바치었다 사적이 창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1634년에 어버이를 모시고 江都(강도)에 갖다가 돌아오는 길에 胡將(호장)에게 붙잡혔으나 굴복하지 않고 도리어 호장을 꾸짖으면서 아버지와 더불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호장이 그 분의 충성과 효성에 감동되어 방면하게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