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유풍이 있는 집안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난 것을 평생토록 한으로 여겼다 유독 어머니의 생활주변에 신경을 쓰고 침식등에도 소홀함이 없이 지성으로 섬겨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났을 때 효성이 지극하여 신의 感應(감응)이 있어 병을 낫게 하였으며 喪(상)을 당하여서는 삼년의 廬墓(여묘)를 살으셨다 鄕人(향인)들이 크게 仰慕(앙모)하여 士林(사림)들이 薦狀(천장)을 올려 포상하여 줄것을 간청하였다 사적이 湖南誌 聖績圖(호남지 성적도)등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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