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6년1357丁酉4월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시고 좌대언을 거쳐 1362년 지신사로 홍건적란때 공을 세워 2등공신에 책록되었고 1374년에 同知貢擧(동지공거)밀직부사가 되어 乙科(을과)3명 丙科(병과)7명 同進士(동진사)23인의 명사를 선발하시었으며 탐라 목호의란때는 양광 전라 경상도 도병마사가 되어 난을 평정한 후 서성군에 봉해지고 삼사좌사를 지내셨다 우왕6년1380庚申榜(경신방)때 동지공거가 되시어 명사를 많이 뽑았다 우왕12년1386丙寅榜(병자방)때 또 다시 동지공거가 되시어 맹사성 등 33인의 명사를 多取(다취)하시었다 1388년 이성계의 계략과 최영 조반 등의 모함으로 참혹한 화를 당하게 되었다 공의 문집이 전해지고 있다 세종때 이르러 문신인 醉琴軒(취금헌) 박팽년등이 伸雪錄(신설록)을 지어 임금께 올려 원통함을 풀어 주었다 太虛亭 崔恒(태허정 최항)이 기록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