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3년 1377丁巳榜(정사방)때 문과에 합격하시고 위의 관직에 계시다가 무진의 참화 뒤에 한강가에 은거하시면서 밭을 갈고 낚시질 하시면서 聲望(성망)과 名利(명리)를 외면하시다 태종때 공의 誼理(의리)에 알맞은 행실을 가상히 여겨 工曹參議(공조참의)에 발탁되었으며 조금 후에 副使(부사)로 임명되어 태종11년1411辛卯 9월2일 중국에 辨誣(변무)하러 가실 때 호정 하륜 독곡 성석린 선생 등이 시를 지어 격려하였으며 춘정 변계량은 서문을 지어 격려하였다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시니 黃州牧使(황주목사)에 제수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