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은 강원도 김화읍 읍내리 485번지로 18세 당시부터 독립운동자들과 교유하여 비밀결사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3·1독립운동 당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1년4월에는 상해로 건너가서 전차감독으로 근무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23년4월에 임시의정원 강원도의원에 선출되어 의정활동에 참여하였다 그후 1945년3월까지 여러차례 의정원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7월에는 상해3.1당에서 임시정부경제후원회의 창립 총회가 열려 임시정부를 유지 지원하기 위한 후원금을 확보하도록 하였는데 위원장에는 안창호가 선출되었으며 공은 이유필 임필은과 함께 회계검사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3월에는 상해한인청년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9년에는 남경에서 민병길 윤기섭 성주식 신익희 연병호 최용덕 안재환 김홍일 등과 함께 한국혁명당을 조직하였다 이 당의 목적은 사상의 정화와 독립운동 진영의 단결을 꾀하는 것으로 동시에 산하에 철혈단을 조직하여 무력 행동대로 삼았는데 그 단장에는 안재환이 선출되었으며 중견 단원으로는 김창화 나월환 이건호 이영희 최경수 등이활동하고 기관지로 「우리길」을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며 단원 훈련과 교양에 이바지하였다 1932년에는 당원이 약 40명 가량으로 늘어 상해와 남경 등에서 계속 활동하였는데 공은 당의 중견간부로 활약하였으며 같은 해에 다시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1935년11월까지 재직하였다 1941년에는 광복군총사령부부관처 관리과장으로 임명되어 근무하였으며 1944년6월5일부터는 임시정부군무부 총무과장겸선전부간사로 임명되었고 동년9월에는 군사위원회 간사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45년3월부터 다시 임시의정원의원에 선출되어 광복시까지 일생을 조국 광복에 이바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