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소에는 원래부터 비석이 세워져 있었으나 훼손되어 있으므로 1979己未에 16세손 吉燮(길섭)의 정성으로 陽川許演(양천 허연)의 陰記(음기)로 된 비와 상석을 重竪(중수)하였다 동래정씨대동보1권17면 15세 鄭麟孫의 사위로 廉紀선조와 아들 孝騫 孝曾 사위 趙普(敎授) 韓昫(持平)의 기록과 氏族源流 787면 紀선조의 출생순 자녀에 女趙普(敎授) 子孝騫 子孝曾 女韓昫(持平)의 기록에서 配位에 東萊鄭氏와 女趙普가 누락된 것으로 보여 후일 참고를 위해 기록함(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