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기골이 장대하시고 학문이 넓고 깊었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독실하였으며 성장하면서 우암송시열을 스승으로 모시고 덕행과 器量(기량)이 더욱 진취되었으며 당시 스승과 문답식으로 주고 받았던 글과 詩句(시구)가 있다 인조 때에 그 분의 의로운 행실을 가상하게 여겨 특별히 동몽교관에 제수하였으나 어버이가 늙으셨다는 이유로 취임하시지 않았다 또 本州靑巖(본주청암)의 道察訪(도찰방)에 제수하여 그 곳에서 살면서 부모를 봉양토록 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錦江(금강)위에 納爽(납상)이란 정자를 짓고 경학을 즐겨하시었다 朴思菴 金退漁齊 洪北汀 朴懷齊(박사암 김퇴어제 홍북정 박회제)등 여러 賢人(현인)들이 지은 싯구들이 납상정에 있다 병자호란 때에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행차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켰었다 병사들을 모으고 격문을 여러 고을에 보내어 礪山(여산)에서 집결하기로 약속하고 청주에 이르렀으나 화친이 이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통곡하면서 군사를 철수하였다 그 후 두문불출하시고 출세할 것을 사절하시니 倡義錄 錦城誌(창의록 금성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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