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성리학에 독실하여 微妙(미묘)하고 深奧(심오)한 論理(논리) 등을 연구하시고 우암 송시열을 스승으로 모시고 實工(실공)을 확충하였다 우암 송시열선생이 남쪽으로 귀양 갈 때에 맏 형 敎官公(교관공)과 더불어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서“鱷水(악수)와 湘潭(상담)은 옛부터 슬퍼하는 바이네”라고 하는 詩句 등이 있다 이로 인하여 세상을 등지고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런 훌륭한 행실이 선교랑에게 알려져 慶基殿參奉(경기전참봉)으로 임명하였으나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進士李弘俊撰狀(진사이홍준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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