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문장이 뛰어나 여러번 鄕解(향해)에 뽑혔으며 1867년丁卯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泮宮(반궁) 성균관에 계시면서 齋首(재수)가 되다 1872년壬申 2월에 文廟(문묘)의 釋尊(석존)을 거행케하여 영의정으로부터 성균관 유생들까지 함께 임금을 모시게 된 자리에서 임금이 시를 지으시되 ‘우러러 先王(선왕)의 예에 따라 泮宮(반궁)에서 釋尊(석존)드렀네 夫子(부자-공자)의 학문익히니 우리의 道(도) 더욱 빛나리라’라고 하심에 따라 公이 賡載詩(갱재시) 일수를 올린 것이 함께 발간되었다 임금께서 특별히 오륜행실4권을 내려 본가에 소장하도록 배려하시다 族弟 在業(족제 재업)이 家狀(가장)을 지었으며 光山(광산)정시림이 행장을 지었다 행적이 山陽誌(산양지)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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