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전면 조각 내용 파주염씨 연원(淵源) 파주염씨는 삼한공신이고 대사도 벼슬을 한 염형명이 시조이고 관향은 파주이고 단일본이다. 고려국 개혁공신인 휘(諱) 상(相)과 재상을 역임한 휘(諱) 현(顯) 봉성태사까지 오르신 시 효문공(諡 孝文公) 휘 신약, 도첨의중찬을 지내신 시 충정공(忠靖公) 휘 승익(承益) 그리고 좌우정승과 문하시중을 지내신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시 충경공(忠敬公) 매헌(梅軒) 염제신은 중시조이고 명문거족으로 염문의 위상을 높이셨다.
공민왕이 친히 그린 충경공 초상화는 보물 1097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 충경공의 세분 아드님은 국파공 휘 국보는 서성군 예문관 대제학, 동정공 휘 흥방은 서성군 성균관 대사성 예문관 대제학, 청강공 휘 정수도 사헌부 대사헌 우문관 대제학으로 고려국에서 가문의 중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382년 역성혁명으로 조선국이 개국하자 염문의 후손들은 충신불사이군으로 은둔생활로 이어졌지만 임진왜란때 창의하여 공을 세운 휘 걸(傑), 휘 서(瑞), 휘 홍립(弘立), 휘 말경(末卿), 휘 언상(彦祥) 장군은 원종곤신에 책록되어 있고 한말(韓末)항일 투쟁에 몸바친 휘 온동(溫東) 열사도 우리 염문의 후손이며 한국 사실주의 문단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횡보 휘 상섭도 우리의 자랑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선조님들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알고 그 뜻을 후손들은 이어 살아가는 목표를 바르게 하고 의지를 굳게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을 다하자.
서기 1999년 5월 29일 坡州廉氏 大田宗親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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