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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인물

역사속의 파주염씨 선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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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별

역사속의 염문 선조님들

참고 자료

신라시대
인 물 편

廉   宗

廉   相

廉   長

廉   居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 시조 이전의 역사적 인물들

  염종(廉宗) :  생몰 미상. 신라 선덕여왕 때 사람으로 647년(선덕여왕 16) 1월에 비담과 함께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하고 왕을 폐위시키고자 하여 명활성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켰다. 이에 월성에 주둔한 관군과 10여일 동안 공방전을 벌이며 잘 버티었으나, 결국 김유신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였다. 염종 등은 살해되고 또 9족이 죽음을 당하였는데 이에 연좌되어 살해된 자가 30명이었다.(참고문헌 : 삼국사기, 상대등고, 역사학보, 신라정치사연구, 이화사학연구, 신라정치체제와 변혁과정, 신라사기초연구)

  염상(廉相) : ?~775(혜공광 11). 신라 경덕왕 때 대신, 758년(경덕왕 17) 정월 이찬으로서 시중 김기의 뒤를 이어 시중이 되었으며, 2년 뒤인 760년 4월에 시중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 775년(혜공왕 11)  8월에 전임 시중 정문과 함께 모반하다가 복주되었다.  그가 시중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경덕왕 때에 추진한 한화정책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상고할 수 있다. 이들 개혁의 주체세력은 763년 8월에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옹 및 대나마 이순 등이 관직을 떠나 산속에 묻혀 살았던 일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특히 혜공왕 12년(776)에는 경덕왕 때 개혁한 관제를 원래대로 복구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염상의 모반 사건은 개혁반대 세력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생각된다.(참고문헌 : 삼국유사, 삼국사기, 신라김사부의 성립, 신라정치사회사 연구)

  염장(廉長) : 생몰 미상. 신라 진덕여왕 때의 진골 귀족.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천공.임종공.술종공.호림공.유신공 등과 더불어 사영지의 하나인 남산의 오지암에 모여서 국사를 의논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그는 진골 출신으로서 대등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참고문헌 :  삼국유사, 대등고, 신라정치사회사 연구)

  염거(廉居) : ?~844(문성왕 6). 신라 말의 선승. 염거(廉巨)라고도하며, 가지산파의 2대 조사이다. 도의의 제자로서, 도의가 진전사에서 입적할 때 오직 그에게 전심하고 선을 널리 펼 것을 당부하였다. 주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무르면서 선법의 홍포에 주력하였고, 사교를 배척하였다.  항상 일심을 닦고 밝혀서 삼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였다. 선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시대에 오직 일념무주(一念無住)만을 의지하고 지내다가, 체징에게 법맥을 전하여 가지산파를 대성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뒤 입적하였다. 탑은 원래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법흥사지에 있었으나 현재 국보 제104호로 지정되어 경복궁 경내에 있으며, 이전 때 발견된 지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참고문헌 : 조선금석총람, 조선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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